제목   단디해라.
 작성자   행복  등록일   201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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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디해라 

 

어릴 적, 대문을 나서며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면 어머니는 늘 “단디해라.”고 말씀하셨다. "단디" 라는 말은 "제대로" 또는 "야무지게"란 뜻의 경상도 사투리다. 어머니의 말씀 속엔 몸조심해라, 친구들과 잘 지내라, 한눈팔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라 따위의 뜻이 담겨 있었다.

어머니는 내게 말로만 "단디"를 강조하신 게 아니었다. 3년 전 하늘로 가시기까지, 일평생 모든 생활 속에서 몸소 "단디"를 실천하셨다. 그런 점에서 어머니는 살아 있는 박물관이었다.
일례로, 어머니는 모든 걸 아끼고 조심히 다루셨다. 식구들 양말이 해지면 꼼꼼한 바느질 솜씨로 일일이 기워 주셨다. 헌 옷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쓸만한 쪼가리를 가위로 잘 베어다 켜켜이 쌓아 두셨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을 가면 나는 혹시라도 친구들이 내 속옷의 기운 곳을 볼까 봐 노심초사했다. 설거지할 때도 그릇이 깨지지 않게 조심 또 조심하셨다. 혹시 이가 나간 그릇이 생기면 다른 용도로 재활용하셨다. 항아리가 깨지면 구리철사로 테를 두르셨는데, 내가 금이 간 항아리를 잡아 드릴 때도 어머니는 “단디 잡아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늘 아끼고 검소했지만 마음만은 넉넉했다. 거지가 지나다 밥한 술 부탁하면 국수라도 한 그릇 대접하고 나야 마음 편해하셨다. 내가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는 것도 그런 어머니 영향이지 싶다.

어느 날 아침 일찍, 나는 어머니가 유령과 대화하는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무도 없는데 장독대 옆에서 혼잣말을 하시며 바다 쪽을 향해 정성껏 빌고 계셨다. 자식들이 "단디" 클 수 있도록 잘 도와달라고 용왕님께 비는 것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떠올랐다.

지금도 나는 중요한 일을 할 때마다 "단디 해라." 던 어머니 말씀을 떠올린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어머니의 "단디" 정신이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단디"를 실천하신 어머니의 "삶의 경영"이야말로, 물질의 풍요 속에서도 낭비와 불행이 가득한 오늘의 문제를 푸는 작은 열쇠가 될 것이라 믿는다.

강수돌 님 ㅣ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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