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암은 '앎'이다
 작성자   운영자  등록일   201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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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은 "앎"이다

 

 과학의 시대를 가장 잘 대변해 주는 것이 의학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의 질병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과학적 발전의 혜택이 가장 시급하기도 했을 것이다. 희망적인 이야기도 분명 많아 졌지만 아직도 암 정복의 길이 순탄하지 만은 않다. 나는 이 자리에서 암을 접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암에 관한 일반적인 의학적 접근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암과 연관된 우리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다.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70을 갓 넘긴 초로의 신사가 진료실을 찾았다. 나는 종양학을 전공하는 외과 의사다. 말하지만 암 수술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위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윽한 풍채처럼 그는 담담하다. 나에게 어떻게 암이 생기는 것인지 묻는다. 대부분의 암이 그렇듯이 우리는 왜 암이 생기는 지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의학의 한계다. 그는 살짝 짜증이 난 것처럼 보인다. 나의 생활이 다른 사람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의사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나의 암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호기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으랴? 의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원인을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생로병사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일이라 생각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의사는 좋은 말을 해주고 있지만 왠지 커다란 위험에 봉착해 있는 것 같다. 절망스러워지고 뭔가 끝에 다다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내왔던 시간들을 반추한다. 마치 암이라는 진단이 나의 잘못에 대한 형벌로 느껴진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부분의 암 진단 환자들이 갖는 생각일 것이다. 내 삶 그리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 그리고 후회와 죄의식. 병든 몸은 우리를 가장 진실한 순간으로 이끈다. 대부분의 암 환자들은 누구나 이러한 경험이 있다. 암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후 정말 심각하게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았다고 한다. 가장 진실되게 지나온 날을 되새겨 보았다고 한다. 사심 없이 한번도 해보지 않았을 인생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해 보았다고 한다. 고마운 사람들, 차마 하지 못했던 아쉬움과 다시는 되풀이 하고 싶지 않는 부끄러운 기억들이 너무도 생생하게 그의 마음에 다가온다고 한다. 자랑스러운 나의 모습보다는 죄를 지은 부끄러운 사람이 된다고 한다. 인생을 통틀어 가장 진실한 순간의 나는 그다지 자랑스러운 모습은 아닌 것 같다고 한다. 인생의 진리가 이렇게 얻어지는가? 육체의 건강을 잠시 잃었지만, 그는 이제 인생을 가장 깨끗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이제 암은 앎이 된다. 나는 그 순간을 깊이 간직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귀중한 시간일지 모른다. 물론 죄가 병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그래서 성인군자도 병에 걸릴 수 있고 천하의 불한당도 장수하며 산다. 질병은 의학적 현상이다. 감정이 아니며 선악과 도덕은 끼어들 곳이 없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환자들은 병에 걸리면 죄인이 된다. 실제 법정에 서지는 않지만 자신의 인생을 너무나 진실되게 재판한다. 진실함 앞에 무죄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암은 몸에서 없어져야 한다. 하지만 암이 주었던 인생의 진실함과 성찰의 기억은 깊이 간직했으면 한다. 왜냐하면 이 순간이 바로 "암(癌)"이 삶의 "앎"이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수술은 잘 끝났다. 암의 진행 정도도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다. 회복실에 있는 연약한 육신을 다시 찾아 위로의 말을 전한다. "잘 끝났습니다."

 이 말이 위안이 되었을까? 환자는 아직도 비몽사몽! 내 말을 잘 알아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가지 더, 가만히 살펴보니 우리의 노신사의 삶은 그다지 잘 못되지 않은 것 같다. 그도 자신을 재판하여 중죄라도 지었다고 생각하였다면 나는 오늘 그의 진실한 삶을 열렬히 변호할것이다.

 

출처- 대전일보  김정구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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