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동행》 2012년 11월호 중에서
어느 여름날, 절 앞뜰의 풀이 시들어 누렇게 변했다. 그 광경을 본 동자승이 말했다. “보기 싫으니 빨리 씨를 뿌려야겠습니다.” 그러자 주지 스님은 휘휘 손을 저었다. “때를 따라야 한다.”
서늘한 가을날이 오자 주지 스님은 씨를 한 봉지 사 와 동자승에게 뿌리라고 했다. 그런데 씨를 뿌리는 동안 바람이 불어 씨앗이 흩어져 버렸다. 동자승은 당황해 외쳤다. “씨앗이 거의 다 바람에 날렸습니다.” “괜찮다. 성질을 따라야 한다.”
동자승이 씨를 뿌리고 나자 어디선가 새들이 날아와 땅속의 씨앗까지 쪼아 먹었다. 동자승은 발을 동동 굴렀다. “이러다가 새들이 다 먹겠어요.” “내버려 두어라. 섭리를 따라야 한다.”
폭우가 내린 다음 날, 동자승의 방까지 물이 밀려들어 와 있었다. “큰일입니다! 씨앗들이 다 쓸려 내려가겠어요.” “흘러간 곳에서 싹을 틔우겠지. 인연을 따라야 한다.”
몇 주 뒤, 아무것도 없던 땅에 파릇파릇한 풀이 돋아났다. 심지어 씨를 뿌리지 않았던 구석진 곳에서도 자랐다. 동자승은 자기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주지 스님도 고개를 끄덕였다. “옳거니! 기쁨을 따라야 한다.”
글ㆍ월간 《행복한동행》 편집팀 |